신앙은 무엇으로 성장하는가
선한교회 2021. 8. 8. 16:39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면 점점 자라납니다. 그러나 시간이 걸립니다. 활동도 해야 하고 음식도 먹어야 합니다. 자라는 것은 눈으로 보이지 않지만 어느 순간엔가 훌쩍 자라나 있는 것을 봅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상적인 신앙은 자라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열매도 맺습니다. 이것은 그의 인생에 있어서 놀라운 축복이 됩니다. 오늘은 ‘신앙은 무엇으로 성장하는가’ 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본문에는 한 비유가 나오는데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에 대해 말씀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땅에 씨를 뿌렸습니다. 그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랐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그렇게 되었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었습니다. 처음에는 싹이 나고 다음에는 이삭이, 그리고 충실한 곡식이 맺혔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눈으로 보이는 나라는 아니지만 오늘날 우리는 여러 나라 여러 민족 중에서 그 열매를 봅니다. 성도들이 그 열매요, 교회가 그 열매인 것입니다. 물론 성도들이 사후에 가서 영원히 살게 될 하나님나라, 천국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나라는 세 가지로 보여집니다. 우선 믿는 자들이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리고 교회가 하나님나라요 천국이 하나님나라입니다. 미미한 예수님의 제자들 몇 명을 시작으로 전파된 십자가의 복음이 오늘날 수많은 영광의 복된 열매를 맺힌 것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되었습니까? 살아계신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믿는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나라 이므로 같은 방법으로 성도의 신앙도 성장하고 열매를 맺습니다. 첫째로, 복음과 말씀의 씨가 뿌려져야 합니다. ‘씨’는 복음 즉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킵니다. 하나님나라는 사람들 마음에 십자가의 복음이, 하나님의 말씀이 심겨져야 임합니다. 말씀이 뿌려지지 않으면 영광스러운 하나님 나라도 영혼의 축복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 영적 원리를 아는 사탄은 사람들에게서 말씀을 듣지 못하게 할 뿐만 아니라 뿌려진 말씀도 빼앗아 가려고 끝없이 집착하고 공격합니다. 본문 전에 있는 ‘씨 뿌리는 비유’를 보면 길가에 떨어진 씨앗은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다고(4:4) 했고 이것은 ‘곧 말씀을 들었을 때에 사탄이 즉시 와서 그들에게 뿌려진 말씀을 빼앗는 것이요’(4:15)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에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그의 나라가 임하고 그 나라의 축복이 확장되고 풍성한 열매들이 맺혀지려면 우선 그 나라의 말씀인 하나님의 말씀이 지속적으로 내 마음에 뿌려지도록 해야 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들어야 합니다. 많이 읽어야 합니다. 특별히 개인적으로 말씀을 읽을 때 신앙의 놀라운 영광을 경험한 사람들을 기독교 역사에서 많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늘 가까이에 두고 사랑하고 사모하고 읽으시기 바랍니다. 보통 책을 읽는 것처럼 읽어서는 성경의 축복을 누릴 수 없습니다. 첫째로, 성경은 믿음으로 읽어야 합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어야 합니다. 성경이 진실이요 진리임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성경의 말씀을 통해서 그분을 나타내심을 믿어야 합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 하는 마음으로 읽어야 합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뜻을 전적으로 순종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읽어야 합니다. 그러면 성령께서 빛을 비쳐주시고 놀라운 역사를 하시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많이 읽는 것도 좋지만, 자세히 정독하는 것이 더욱 좋습니다. 둘째로, 뿌려진 씨를 품고 기다려야 합니다. 씨를 뿌리자마자 즉시 자라고 열매 맺지 않습니다. 한 동안 땅이 씨앗을 품어야 합니다. 말씀도 읽는 것으로 그치지 말고 마음에 품어야 합니다. 그래서 말씀을 반복해서 읽고, 묵상하기도 하고 외우기도 합니다. 내 마음에 말씀이 오래 남아 품어질수록 많은 축복의 결실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작은 씨앗 속에 생명이 있고, 열매의 형체가 있듯이 하나님의 말씀 속에도 하나님의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이 있습니다. 품어진 말씀만이 하나님의 때에 역사합니다. 그 일은 성령님께서 하십니다. 이삭이 나고, 싹이 나고, 열매가 맺히는 것이 신비이듯이 성령님의 역사도 신비롭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역사를 분명히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시간이 필요합니다. 믿음을 가지고 기다리십시오. 그리고 지속적으로 말씀을 마음에 심고, 묵상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말씀대로 살아가십시오. 때가 되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입니다. 자신의 신앙이 자신도 모르게 놀랍게 성장되어 있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자신 속에 하나님의 생명이 자신의 생명이 되며, 그리스도의 복음의 영광과 기쁨과 평강이 자신의 삶에 열매맺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4주 전by 윤부현영생과 예배
선한교회 2021. 8. 1. 17:42 한 번은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지방을 지나시고 계셨습니다. 제자들은 먹을 것을 사러 동네에 내려갔고 예수님은 피곤하여 우물 곁에 앉아 계셨습니다. 물론 예수님에게는 물 길을 그릇이 없어 물을 마실 수도 없었습니다. 그때 사마리아 여인 한 명이 물을 길으러 왔고, 예수님은 물을 달라고 청하셨습니다. 그때 그는 상종하지 않는 사마리아 사람인 자신에게 유대인인 예수님이 왜 물을 달라고 하느냐며 신기한 듯 반문했습니다. 주님은 동문서답처럼 대답하시기를 10절에 “네가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 자신이 누구시며, 무엇을 주려고 오신 분이심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계속 대화를 나누시면서 이르시기를 14절에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고 하십니다. 여인은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의 본 뜻은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예수님께서 자신의 과거를 밝히 알고 계시는 모습에 예수님을 선지자라고 고백합니다. 그러면서 예배문제에 대해서 질문을 드립니다. 주님은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때가 이르겠는데 바로 지금이라고 하시면서 하나님은 그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신다는 말씀해 주십니다. 본문은 두 가지의 중요한 진리를 선포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영생의 진리요 하나는 예배의 진리입니다. 첫째로, 예수님은 영생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이 궁극적으로 이 여인을 만나신 것은 그녀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함이셨습니다. 그리고 이 동네 사람들을 구원하기 원하신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그녀에게 생수를 주신다고 하셨고, 그 물은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영생이란 영원한 생명이란 뜻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영원히 살 수 있었던 아담과 하와는 죄를 지음으로 말미암아 사망에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이후로 태어나는 모든 아담의 후손들은 사망의 짐을 지고 살다가 결국 죽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근본적인 생명이라고 말할 때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생명의 근원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그 안에 있는 자는 그 생명을 갖게 되는 것이요.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상태에 있는 자는 살았으나 죽음에 있는 것입니다. 천국은 하나님의 나라요 지옥은 형벌의 장소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은 죄 없는 자가 받게 되는데, 예수님께서 이 죄 문제를 십자가에서 해결하시러 오셨고, 또 해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자는 죄 문제가 해결되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었으며, 그의 생명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의 나라인 천국의 생명입니다. 반면에 인생에서 죄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 사람은 죄 값으로 영원한 형벌의 장소인 지옥에 떨어져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의 심판을 받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사망인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육신의 사망을 첫째사망 그리고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지옥불에 떨어지는 사암을 둘째사망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오신 것은 이 죄 문제, 사망의 문제를 십자가에서 친히 담당하여 처리하시고 죄인들에게 영생을 주러 오신 것입니다. 그는 모든 자를 위해서 오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지만, 그가 주시는 은혜인 죄 사함과 영생은 그를 믿는 자만이 받고 누리게 되는 축복인 것입니다. 우리 모두 예수 믿어 그가 주시는 영생을 소유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사람은 예배하는 자입니다 예수님을 선지자라고 여긴(실은 메시야입니다.25,26절) 이 여인은 예배는 어디에서 드리는 것이 옳은 것이냐고 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장소를 넘어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때가 오게 되는데 지금이 바로 그때라고 하시면서 하나님은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들입니다. 예배는 신앙생활의 근간입니다. 예배는 가장 중요한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의 신앙의 표현입니다. 마음만 믿으면 그만이지 마음이 중요하지 하는 생각은 결국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지 않는 것입니다. 창세기 처음부터 하나님의 사람들은 제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일은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에게 있어서 뗄 수 없는 가장 중요한 일이요 명하시는 일이었습니다. 예배는 이처럼 중요합니다. 그리고 내용과 형식은 영과 진리인 것입니다. 영적으로 드려야 하며 말씀이 있고 진정성이 있어야 온전한 예배이며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가 되는 것입니다. 믿는다고 하면서 예배를 드리지 않는 신앙은 결코 올바른 신앙이 아닙니다. 예배를 가장 귀하게 여기십시오. 그리고 영과 진리로 드리십시오. 오늘날도 여전히 하나님은 예배자로 만나 주십니다. 할렐루야!4주 전by 윤부현바울의 교회사랑
본문: 롬8:1~15 선한교회 2021. 7. 24. 22:27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사도 바울은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과거에는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을 잡아서 옥에 넘기고, 성도를 죽이는 일에 찬성투표를 던지던 그가 이제는 예수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며 끊임없이 성도들과 교제하고픈 사람으로 바뀌었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그러한 사도 바울의 교회를 향한 열망과 사랑이 여실히 나타나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 주님을 따르고 사랑하게 되면 그의 몸된 교회를 사랑하게 되고 그 몸의 지체들인 성도들과 교제하고 사랑을 나누고 섬기고 싶어 합니다. 바울은 소아시아의 여러 지역을 다니며 전도해서 많은 교회들을 세웠으나 로마교회는 소문으로만 들었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습니다. 정말 가고 싶고 보고 싶었습니다. 오늘 바울의 로마교회를 향한 사랑의 말씀을 상고하며 우리들도 그런 아름다운 사랑이 우리 가슴에서 다시 불일 듯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일은 주님을 사랑하는 일이요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은 교회를 사랑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첫째, 로마교회를 향한 바울의 감사(8,9절) 로마교회를 생각할 때 바울은 먼저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 쉬지 않고 기도했습니다. 그가 하나님께 감사한 이유는 그들의 ‘믿음’ 때문입니다. 8절에 “너희 모든 사람에 관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 됨이로다” 가장 귀하고 은혜로운 일은 성도들의 믿음을 보면서 감사하는 일입니다. 당시 로마는 철저히 세속적인 도시였습니다. 정치의 중심지요, 세상문화와 철학의 도시요 쾌락과 환락이 극도로 발달한 도시요 각종 우상을 숭배하는 다신교의 중심지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곳에서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갖고 교회가 세워진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그러한 곳인데도 그들에게 믿음을 갖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들을 위해 쉬지 않고 기도한다고 말합니다 9절에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 우리도 예수님을 사랑하고 그의 몸된 교회를 사랑하는 성도는 성도들의 믿음을 보면서 감사하고 또 믿음을 위해 항상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려운 가운데서 믿음을 지키는 성도들, 이제 막 믿음을 갖게 된 성도들, 범사를 믿음으로 살아보려고 몸부림치는 성도들 이런 분들이 교회에서는 귀한 분들이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일입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며 주님이 주시는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엡2:8절에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그러므로 믿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기도를 드려야 할 뿐만 아니라 믿음을 위해 기도해야겠습니다. 막9:24절에 귀신 들린 자의 아버지도 아들의 치료를 예수님께 간청하며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라고 했습니다. 둘째로, 성도들과 교제하고 싶은 이유(10-15절) 당시 세계적인 도시인 로마에는 볼거리도 많이 있었겠지만 바울의 소망은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신령한 것, 영적인 것을 나누어 주고 싶었습니다. 즉 복음과 진리, 영혼을 위한 은혜들을 나누어 주기를 원했습니다(11절). 그들의 믿음과 자신의 믿음의 교제로 피차 힘을 얻고 안위를 받고 싶었습니다(12절). 그리고 로마교회의 방문이 성도들에게 많은 영적인 열매들을 맺게 하는 계기가 되기를 원했습니다(13절). 성도의 은혜로운 교제는 바로 이러한 유익이 있는 것입니다. 목회자와 성도, 성도와 성도간의 믿음의 교제는 참으로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도 성도의 교제를 귀히 여기며, 영적인 사귐을 많이 나뉘어 이상과 같은 아름다운 열매들을 많이 얻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바울은 복음의 교제를 하고 싶었습니다(14,15절). 복음의 진수를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여러 번 길이 막혀서 로마교회를 갈 수 없게 되자 포기하지 않고 사랑의 편지를 쓰기로 작정합니다. 이렇게 해서 쓰여진 편지가 바로 로마서입니다. 그는 얼굴로 대면해서 로마교회 성도들을 만나지는 못해도 사랑의 편지를 통해 자신의 뜨거운 사랑의 심정과 복음의 진수들을 로마교회에 전합니다. 덕분에 오늘 우리는 놀라운 성경, 복음 중의 복음이라고 일컬어지는 로마서를 대면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코로나19로 우리가 대면해서 자유로운 성도의 교제는 할 수 없을지라도 전화나 기도, 기타 가능한 방법으로 성도의 교제를 나누며, 서로 격려하므로 주님의 교회를 사랑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4주 전by 윤부현바울의 회심
선한교회 2021. 7. 17. 14:42 본문 : 행26:12-23 성경에는 역사적인 많은 사건들과 하나님을 만난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하나님은 영(靈)이시므로(요4:24) 보이지 않으실 뿐만 아니라, 아무도 볼 수 없습니다(딤전6:16). 그러나 그분은 영원히 살아계셔서 역사하시고 계심을 사건들과 삶들을 통해 보여주고 계십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의 간증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이십니다(히13:8). 바울도 그 중의 한 사람입니다. 그는 나타나신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인생의 방향이 완전히 바뀌었고, 그를 통해 예수님을 만난 나라들과 사람들은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첫째, 교회를 핍박하며 달려가던 무지한 인생 오늘 본문은 복음을 전하다가 유대인들의 핍박을 받아 가이사랴에 구류된 상태에 있는 바울이 아그립바와 왕과 베스도 총독 앞에서 자신을 변명하는 내용입니다(25:13-14,22-23, 26:1-3). 그는 과거의 자신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얘기합니다. 그는 바리새파의 한 사람으로 생활하던 자로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대적하여 많은 일을 행하는 것이 옳다고 믿고 살던 사람이었다고 말합니다. 이 일을 위해 예루살렘에서 대제사장들에게 권한을 받아서 많은 성도들을 옥에 가두고, 또 죽일 때에 찬성 투표를 던졌던 사람이었으며. 회당에서는 성도들에게 여러 번 형벌을 가하여 강제로 모독하는 말을 하게하고, 심히 격분하여 외국 성에까지 가서 교회를 박해하던 사람이었다고 고백합니다. 이렇듯 그는 예수님의 대적으로 살아왔고, 교회를 박해하고 핍박하는 인물이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것은 그가 무지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진정으로 누구신가를 알지 못했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잘못된 지식과 믿음이 그를 하나님의 대적자로 살게 했던 것입니다. 9절에 “나도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대적하여 많은 일을 행하여야 될 줄 스스로 생각하고”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바로 알지 못하는 무지와, 그저 다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편견에 사로잡혀 예수님을 알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구원받지 못하고 영원한 지옥불에 떨어져야 하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잘못된 지식과 믿음은 그 사람의 영혼을 파멸로 이끕니다. 예수님은 죄에 빠진 인간들을 구원하기 위해 보내어진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인간의 죄의 짐들을 그의 어깨에 지우시고 십자가에서 그를 벌하셨습니다(사53:4-12). 죄인인 우리들을 대신해서 말입니다. 이제 개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믿고 그를 영접하는 것만이 하나님 앞에서 죄를 사함 받고 구원받는 유일한 길인 것입니다. 요한복음3장17절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많은 사람들이 생명 길을 버리고 멸망 길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간다고 해서 그 길이 좋은 길은 결코 아닙니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고 찾는 자가 적지만,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습니다(마7:13,14). 예수님을 개인적으로 만나셔서 진실 되게 알고 믿고 영접해서 영원히 복된 자가 되시길 바랍니다. 둘째로,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다 교회를 핍박하는 일로 대제사장들의 권한과 위임을 받아 다메섹으로 가는 중이었습니다. 정오가 되었는데 하늘로부터 해보다 더 밝은 빛이 바울과 동행들을 둘러 비추었고 그들은 다 땅에 엎드러졌습니다. 그때 소리가 들리기를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가시채가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라” 그가 대답했습니다. “주님 누구시니이까”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일어나 너의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네게 나타날 일에 너를 종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주님께서는 그를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보내어 그들의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사함과 거룩하게 함과 기업(천국)을 얻게 할 것이라는(18절) 사명을 주셨습니다 이후로 그는 예전의 사울 대신 바울이라는 이름으로 온 세계를 다니면서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가를 전하고,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을 외쳤습니다. 이 복음은 오늘날 우리나라 나에게까지 미쳤고 구원과 영원한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4주 전by 윤부현그리스도와 그의 양
선한교회 2022. 3. 7. 15:42 설교일 : 2022.3.6.주일오전 성 경 : 요10:22-29 예수님이 성전 안 솔로몬 행각을 거니실 때에 유대인들이 에워싸고 물었습니다. “당신이 언제까지나 우리 마음을 의혹하게 하려 합니까? 그리스도이면 밝히 말씀하소서” 예수님께서 대답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미 말하였으되 너희는 믿지 않는도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도 나를 증거하지만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계속해서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오늘은 예수님께서 양과 목자의 관계를 통해서 주시는 세 가지의 교훈을 통해 은혜를 나누시겠습니다. 첫째,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언젠가 그리스도를 그들에게 보내줄 것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스도는 구원자로서 하나님께 기름부음을 받은 자를 말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이나 사역을 보면서 사람들은 그분을 그들이 기다리는 그리스도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유대인들은 믿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믿으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첫째,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언젠가 그리스도를 그들에게 보내줄 것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스도는 구원자로서 하나님께 기름부음을 받은 자를 말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이나 사역을 보면서 사람들은 그분을 그들이 기다리는 그리스도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유대인들은 믿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믿으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첫째는 이미 예수님께서 자신이 그리스도이심을 말해왔다는 것이며, 둘째는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예수님의 사역이 그것을 증거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미 앞에서 배운 것처럼 예수님께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일, 38년 된 병자를 고쳐주신 일, 오병이어의 역사, 날 때부터 맹인이었던 자의 눈을 뜨게 하신 일 등등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나타내는 증거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그 이유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26절). 여러분!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이 믿어지나요? 그렇다면 예수님의 양입니다. 이 사실이 믿어져야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믿어지는 성도님들은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예수님의 양들은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릅니다 본래 양들은 자기 목자의 음성만 듣고 따라갑니다. 타인의 음성은 듣지 않을 뿐만 아니라 피해서 도망갑니다. 예수님의 양들도 목자이신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따라가는 자들입니다. 목자이신 예수님도 그들을 잘 아신다고 말씀하세요. 27절에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들은 예수님의 양된 자와 그렇지 않은 자, 이렇게 두 부류로 나뉘어집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백성인 자와 아닌 자, 천국의 시민인 자와 아닌 자, 구원받을 자와 멸망 받을 자, 이것을 하나님의 ‘선택’이라고 합니다. 창세 전에 이미 하나님께서 구원할 자를 선택하셨다는 말입니다. 그런 자는 때가 되면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믿고 예수님을 따르게 되는 것이지요. 오늘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고 따른다는 것은 놀라운 하나님의 선택의 복을 받은 것입니다. 감사하며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을 잘 따라가시기 바랍니다. 셋째, 예수님은 양들에게 빼앗기지 않는 영생을 주십니다 예수님은 자기 양들에게 영원한 생명인 영생을 주신다고 약속하십니다. 28절에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자기 양들을 위해 목숨을 주신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께서는 그를 믿고 따르는 자들에게 예수님의 생명인 영생을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생명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사흘 만에 살아나심으로 얻으신 영원히 죽지 않는 부활의 생명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자기 양들에게도 예수님은 그의 생명을 주셔서 천국에서 영생 복락을 누릴 것을 약속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생명은 어느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자들이 죄를 지으면 회개시키고, 잘못된 길로 가면 돌이켜 바로 가게 해 주시고, 악한 자가 해하려고 하면 친히 지켜주셔서 마침내 천국에 이르도록 인도하십니다. 예수님은 생명과 능력이 무한하신 목자이십니다. 여러분에게도 빼앗기지 않는 영생을 주신 예수님께 감사하고 예수님의 인도를 따라 영원한 생명의 길을 걸어가시길 바랍니다~ 할렐루야! 아멘.4주 전by 윤부현선한 목자이신 예수님
선한교회 2022. 3. 2. 14:20 설교일 : 2022.2.27.주일오전 성 경 : 요10:7-18 예수님은 자신이 누구신가를 여러 가지로 말씀해 주셨습니다. 본문에서는 ‘나는 양의 문이다’ 그리고 ‘나는 선한 목자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 나라에는 양을 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양들을 몰고 다니면서 풀도 먹이고, 물도 먹이고, 우리에 넣기도 하고, 양을 지키기도 하는 사람을 목자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 성도들을 양이라고 비유하시면서 자신을 선한 목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선한 목자가 있으면 반대로 악한 목자도 있겠지요? 그들을 본문에서는 삯꾼 목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삯꾼 목자는 그저 돈만을 벌기 위해서 양을 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사자나 곰과 같은 맹수들이 오면 양들의 생명을 생각지 않고 도망가 버립니다. 당시에도 많은 바리새인이나 서기관들 즉 양들과 같은 백성들을 잘 인도해야 할 종교지도자들이 양들을 사랑하기는커녕 자신들의 이익만을 위해서 백성들을 잘 못 가르치기도 하고 백성들의 재물을 약탈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을 삯꾼 목자들이라고 말하면서 그들은 목자도 아니요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달아나 버리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리가 양을 물어가고 헤친다고 했습니다. 선한 목자이신 우리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 알아보겠습니다. 첫째,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11절을 보면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라고 하셨고, 15절에도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예수님은 죄에 빠진 사람들을 길 잃은 양이라고 하셨고, 목자없는 양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잃어 버린 양들을 찾으러 이 세상에 오셨고, 목자 없는 양들의 목자가 되시려고 오셨습니다. 사실은 에덴동산에서 범죄 한 후 하나님을 잃어버린 인간들은 오히려 마귀를 따라 죄를 짓는 길로 들어서고 말았습니다. 양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는 마귀는 도둑과 같아서 사람들의 영혼을 도둑질 하고 죽이고 멸망시킵니다(10절). 예수님은 그들을 죄에서 건져주시기 위해 자기가 대신 죄값을 치르셨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에서 목숨을 버리신 것입니다.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신 것입니다. 막10:45에는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하셨고, 요일2:2에도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제 예수님을 믿는 자는 예수님의 양이고 예수님은 그들의 선한 목자가 되신 것입니다.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은 그의 양들을 죄사함의 길로, 영생의 길로, 천국의 길로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만 따라가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둘째, 양들에게 구원과 생명을 주셨습니다 10절에 보면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9절에도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믿는 자의 구원이 되십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혔습니다. 찬송하고 기도할 때 지진이 나면서 옥문이 열리고 착고들이 풀렸습니다. 그때 간수가 두려워하면서 내가 어떻게 하면 구원을 얻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바울은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행4:12에도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죄에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지옥의 길에서 구원하여 천국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또 예수님은 믿는 자의 생명의 되십니다. 요일5:12에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14:6에도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 안에 영생이 있습니다. 천국에서의 영원한 생명이 있습니다. 예수님 밖에는 영원한 멸망이 있습니다. 꺼지지 않는 지옥 불에서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신 것은 누구든지 믿는 자는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함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양들을 돌보실 뿐만 아니라 양들에게 구원과 생명을 주시는 선한 목자이십니다. 이 사실을 확실히 믿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아멘.4주 전by 윤부현눈을 뜨게 하시는 그리스도
선한교회 2022. 2. 26. 15:00 설교일 : 2022.2.20.주일오전 성 경 : 요9:1-12, 35-41 예수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셨습니다. 제자들이 묻습니다.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 때문인가요 자기인가요 부모인가요?” 예수님이 대답하십니다.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 때문이 아니다.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 그리고는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말씀하십니다.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맹인이 가서 씻고는 눈이 떠져서 밝은 눈으로 돌아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그러나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때 그가 말합니다.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 진흙을 이겨 내 눈에 바르고 나더러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기에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어요”라고 말입니다. 후에 그는 예수님을 반대하던 바리새인들 앞에서 예수님을 ‘선지라’라고 대답했고, 또다시 예수님을 만났을 때는 ‘주’라고 고백하며 예수님을 믿고 영접합니다. 이제 그는 육신의 눈만이 아니라 영적인 눈도 뜨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에게서 하나님이 나타내고자 하셨던 일입니다. 첫째, 예수님은 그에게 육적인 눈을 뜨게 해 주셨습니다 이 사람은 날 때부터 소경이니 세상의 아무 것도 보지 못했습니다. 얼마나 보고 싶을까요? 그런데 제자들은 그가 맹인된 것이 누구의 죄 때문이냐고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사실 그 질문은 당시 모든 사람들의 생각이고 관심이었을 것입니다. 이 말을 들었을 때 맹인의 마음은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불행을 보고 해결해 주기는커녕 어떤 죄 때문인지를 따지며 그저 말꺼리로 삼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들에게는 맹인의 죄 문제도 육신의 병 문제도 아무것도 해결해줄만한 능력이 없지요. 그러나 예수님은 그 병의 원인을 따지지 않았습니다. 그저 그의 병을 고쳐주시고 싶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불행에 처한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시는 분입니다. 죄에 빠져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지옥불에 떨어질 처지에 빠진 수많은 사람들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어 주신 분이 우리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긍휼과 사랑이 풍성하신 분입니다. 성도님들도 어려운 문제가 생길 때 예수님께 기도해서 그분의 긍휼과 사랑의 은혜를 입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의 육신의 문제도 돌아보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해결해 주실 충분한 능력을 가지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둘째, 예수님은 그에게 영적인 눈을 뜨게 해 주셨습니다 맹인 되었던 이 사람은 처음에는 예수님이 누구신지 몰랐습니다. 그저 ‘예수’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으로만 알았습니다. 11절에 “대답하되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 진흙을 이겨 내 눈에 바르고 나더러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기에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노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바리새인들과 대화하는 중에 17절에 보면 “이에 맹인 되었던 자에게 다시 묻되 그 사람이 네 눈을 뜨게 하였으니 너는 그를 어떠한 사람이라 하느냐 대답하되 선지자니이다 하니”라고 하며 예수님을 선지지라고 고백합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을 다시 만난 그가 “네가 인자를 믿느냐”는 예수님의 질문에 “내가 믿고자 하나이다”라고 대답하더니 예수님이 “지금 말하는 자가 그이니라”라고 하시자 “주여 내가 믿나이다”하며 예수님께 절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35-38절). 놀라운 영적인 변화입니다. 그는 이제 영적으로도 예수님을 알아보게 된 것입니다. 영적인 눈이 떠진 것이지요. 예수님께서 그의 육신의 눈을 뜨게 해주신 궁극적인 목적은 그의 영적인 눈을 뜨개 해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영적인 눈이 떠져야 예수님을 믿게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되니까요. 사실 죄에 빠진 모든 인간들은 영적으로 맹인입니다. 그러다가 여러 가지 경유로 영적인 눈이 떠져서 예수님을 보고 믿게 됩니다. 이 맹인은 육신의 눈이 멀었던 일로 영적인 눈이 떠졌습니다. 어떤 사람은 병에서 고침 받고, 어떤 사람은 실패를 통해서, 어떤 사람은 누군가의 전도를 받고, 어떤 사람은 믿는 부모님을 통해서 등등 여러 경로로 예수님께 나오게 되고 영적인 눈이 떠져 믿고 천국에 들어가게 됩니다. 39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이 믿어지고 천국과 영생이 믿어지는 성도님들은 영적으로 맹인 되었다가 눈이 떠진 사람들입니다. 이런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믿음생활 잘 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할렐루야 아멘,4주 전by 윤부현간음한 여자의 용서
선한교회 2022. 2. 15. 20:20 설교일 : 2022.2.13.주일오전 성 경 : 요8:1-11 어느 날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 중에 잡힌 여자를 예수님 앞에 끌고 옵니다. “선생님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런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는데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라고 묻습니다. 사실 이들은 예수님께 옳은 가르침을 받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 고발할 조건을 얻으려고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했던 것이지요. 사람을 악한 목적으로 시험하는 일은 아주 나쁜 일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땅에다 무언가를 쓰신 후에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이 말씀을 들은 그들은 양심에 가책을 느끼며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님과 그 여자만 남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 여자는 죄로 인해 죽을 수 밖에 없는 처지에 처해 있었지만 예수님의 은혜로 죽음의 자리에서 구원을 받습니다. 첫째,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다 죽을 죄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다른 사람의 죄를 지적하며 율법으로 판단해 죽이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자기 자신의 죄를 들여다보게 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이런 죄를 진 여자는 죽여야 한다며 위협과 살기가 등등해서 찾아왔던 그들은 권위 있는 예수님의 말씀에 모두 다 양심의 가책을 받고 돌아갔습니다. 여러분!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다 죄인입니다. 롬3:10에는 “의인은 없나니 하나님도 없으며”라고 했고, 롬3:23에도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담의 범죄 이후로 모든 사람들은 죄인으로 태어나서 평생 죄를 지으면서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광, 즉 천국에 이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스스로 죄에서 나오지도 못하게 되었지요. 죄의 종이 되어 버렸거든요. 누군가가 그를 죄로부터 건져주어야만 구원받고 하나님의 영광인 천국에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죄로 인해 죽음의 처지에 놓여있던 본문의 여자, 즉 간음한 여자의 모습은 세상 모든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그런가하면 돌을 들고 여자의 죄를 정죄하고 판단하며 죽이려고 했던 사람들 역시 세상 모든 사람들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도 죄로 인해 죽을 자리에 있으면서 다른 사람의 죄를 판단하며 죽이려고 하는 모습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롬3:9에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세상 모든 사람들은 용서 받아야 하는 죄인들임을 성경은 선언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서 진정으로 죄인임을 고백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십니다. 구원의 첫 걸음은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고 회개하는 일입니다. 둘째, 예수님은 정죄하지 않으시고 용서하십니다 두려워 떨고 있는 간음한 여자에게 예수님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때 이 죄인 된 여자는 얼마나 감사하고 기뻤을까요?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완전한 재판장이십니다. 그러나 율법의 심판 앞에 두려워하는 여자를 예수님은 정죄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자신들도 죄가 있는 죄인 된 무리들이 이 여자를 정죄하고 죽이려고 달려들다가 예수님의 말씀으로 양심의 가책을 받고 돌을 놓고 다 돌아갔지만 죄 없으신 예수님은 이 여자의 죄를 완전하고 공정하게 물으실 권위가 있으셨지만 예수님은 그를 심판하거나 정죄하지 않으시고 용서하셨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사람들을 정죄하러 오시지 않으셨어요. 오히려 용서하시고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요3:17에 보면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율법과 심판 아래 놓인 사람들의 죄를 대신 담당하셔서 십자가에서 그 저주와 형벌을 다 받으셨습니다. 대신 죄값을 치르신 것이지요. 이제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하고 믿으면 죄로 인한 율법의 저주에서 해방되고 죄로부터 구원을 받아 하나님과의 관계도 회복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며, 의롭게 되어 그의 나라 곧 천국을 기업으로 상속받게 됩니다. 다만 예수님은 용서받은 여자에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당부하셨습니다. 당연한 말씀이지요. 죄로 인해 죽어야 마땅한데 살리심을 받았으니 다시는 죄를 짓지 않는 것이 은혜를 갚는 길이요, 용서받은 자의 마땅한 삶이겠지요. 여러분! 여러분들도 하나님 앞에서 나는 죽어 마땅한 죄인임을 인정하고 고백하며, 예수님을 나의 구원자로 믿고 영접하십시요. 그래서 죄 사함 받고 구원받아 다시는 죄를 범하지 않는 삶을 사시는 사람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할렐루야! 아멘.4주 전by 윤부현예수님의 오병이어의 기적
선한교회 2022. 2. 10. 12:39 설교일 : 2022.2.6.주일오전 성 경 : 요6:1-15 예수님께서 가시는 곳마다 수많은 무리의 사람들이 따랐습니다. 그들 중에는 말씀을 듣고 싶은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병자들에게 행하시는 예수님의 표적을 보려고 따라다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2절). 사실 예수님은 기적을 보여주시기 위함이 아니라 병자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고쳐주셨어요. 마14:14에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 중에 있는 병자를 고쳐 주시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수많은 무리들의 허기진 형편을 헤아리신 주님께서는 제자 빌립에게 이들을 어떻게 먹일지를 물으십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미 이들을 배불리 먹일 뜻과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빌립은 계산적으로 생각해서 그들을 먹일 방법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때 안드레가 한 소년으로부터 도시락을 가져와 주님께 드렸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축사하시고 무리들에게 나눠주어 먹게 하셨습니다. 비록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뿐이었지만 남자 어른들만 해도 오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배불리 먹고 열 두 광주리나 남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오늘 말씀은 단지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만을 보여주는 사건이 아닙니다. 일차적으로는 예수님의 신성 즉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되심을 보여주는 표적이지만, 이 사건에는 우리가 예수님에 대해서 알기를 원하시는 놀라운 하나님의 메시지가 담겨있습니다. 오늘은 그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첫째, 예수님은 자기를 따르는 모든 자들에게 풍성한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자기에게 오는 어떤 자든지 긍휼히 여기시고 은혜를 베푸시는 분입니다. 사실 오늘 주님을 따르던 수많은 사람들 중 대부분이 얼마 후에는 예수님의 곁을 떠납니다. 66절에 보면 “그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그들의 마음을 다 아시는 주님이시지만 그래도 그를 따를 때 예수님은 그들 모두의 형편을 헤아려 살펴 주십니다. 가룟 유다도 그가 예수님을 파실 것을 미리 아셨지만 예수님은 그를 끝까지 사랑하시고 오히려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사랑은 차별이 없으십니다. 누구든지 그를 따르는 자들은 전에 그가 어떤 자이었는지, 후에 어떤 사람이 될지 따지지 않으시고 오늘 예수님을 따르면 그분은 그대로 긍휼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분입니다. 성도님들도 예수님처럼 서로 차별하지 않는 사람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누군가를 따돌리고 힘들게 하는 일은 예수님을 따르는 자의 모습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구원의 은혜도 누구든지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하기만 하면 그분의 흘리신 피로 죄를 씻어주시고 그분의 의로 우리를 의롭게 해주십니다. 우리 모두 누구에게든지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증거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둘째, 예수님은 믿는 자들에게 영원한 생명의 떡이 되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시는 일은 예수님에게는 전혀 기적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하고자 하시면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는 창조자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그분의 은혜는 결코 인색하지 않습니다. 풍성하게 베풀어 주십니다. 언제든지 풍성하신 예수님을 의지하고 간구하고 믿으며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특히 오늘 베풀어 주신 이 은혜는 떡이나 생선을 주시는 것을 넘어 예수님 자신이 우리들에게 영원한 생명의 떡이 되심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요6:33-35에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그들이 이르되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또 요6:47,48에도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십자가에서 우리 위해 죽어 주시므로 믿는 자에게 영생을 얻게 하는 생명의 떡이 되셨습니다. 마20:28에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와 내어주신 몸은 대속의 제물이 되어서 믿는 자들의 모든 죄를 씻어주시고, 영원하고 풍성한 생명을 주시는 능력이 됩니다. 요10:10에도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도님들도 생명의 떡이 되시는 예수님을 믿고 영생 얻는 사람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할렐루야! 아멘.4주 전by 윤부현더 나은 삶을 위하여
설교일 : 2022.1.23.주일오전 성 경 : 요5:1-15 모든 사람들은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위해 많은 수고들을 합니다. 학교에서, 직장에서, 사업장에서 그리고 여러 유형의 삶의 현장에서 끊임없이 수고하고 노력합니다. 오늘 베데스다 연못가에도 수많은 병자들이 행각을 짓고 누워서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들에게는 자신의 병이 낫는 것이 소망입니다. 그것만이 그들에게 더 나은 삶을 줄 것이기 때문이지요. 가끔 천사가 내려와 그 못의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그때 먼저 들어가는 사람은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된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거기 38년 된 병자가 있었습니다. 모든 사람의 사정을 아시는 예수님께서 그의 병이 이미 오랜 줄 아시고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그는 말합니다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노릇입니다. 그는 아마 평생을 거기 누워 있어도 먼저 못에 들어갈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그 사람은 즉시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갔습니다.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후에 성전에서 예수님은 그에게 말씀하십니다.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오늘 말씀에서 더 나은 삶을 위한 두 가지 교훈을 살펴보며 은혜 받겠습니다. 첫째, 진정한 치료자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베데스다’라는 말은 ‘자비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곳에는 자비는커녕 물이 동할 때 서로 먼저 들어가려는 경쟁심과 이기심이 충만한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38년 된 병자에게 실제로 자비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치료하시는 능력으로 그의 병을 치료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을 치료하시는 치료자이십니다. 육신의 병만이 아니라 마음의 병도, 정신의 병도 영혼의 병도 온전히 치료하시는 의사이시지요. 38년 된 병자를 치료해 주신 예수님은 그에 관해 어떤 것도 따지지 않았습니다. 그저 그의 상태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고 치료해 주셨습니다. 물이 움직일 때 베데스다 못에 들어가려면 치열한 경쟁과 이기심이 필요하지만, 예수님은 모든 자에게 조건없이 자비를 베풀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의 은혜를 구한 사람들은 누구든지 그의 사랑과 자비를 입었고 치료를 받았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진정으로 만날 때 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둘째,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전에서 병이 나은 사람을 다시 만난 예수님은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이 말씀 속에서 우리는 그 사람을 38년 동안이나 괴롭혔던 병은 바로 죄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맞습니다. 그는 죄 때문에 병이 들었던 것입니다. 사실 모든 병이 다 죄 때문만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병도 있고, 마귀가 갖다 주는 병도 있습니다. 때론 하나님께서 나를 연단시키고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들기 위한 방법으로 병이 들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실제로 죄 때문에 오는 병도 있지요, 이 38년 된 병자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병이 처음 사람들에게 오게 된 것은 죄 때문입니다, 죄가 없을 때는 병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가 범죄 한 이후로 병도 오고 죽음도 오게 되었지요. 많은 경우에 사람들의 죄는 병을 갖다 주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므로 더 나은 삶을 살려면 죄를 범하지 않아야 합니다. 습관처럼 굳어져버린 죄들을 끊어 버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죄는 마귀가 시키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사람들을 멸하고 죽이는 일만 하거든요. 이제부터 성도 여러분들도 죄를 점점 벗어 버리고, 죄를 짓지 않는 생활을 하시길 바랍니다. 그것은 반드시 여러분의 삶을 훨씬 더 나은 삶으로 만들어 줄 것입니다. 할렐루야 아멘.4주 전by 윤부현예수님의 유월절 만찬
설교일 : 2022.1.16.주일오전 성 경 : 눅22:14-23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고난을 받기 전날 밤에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만찬의 포도주와 떡을 함께 나누시기를 간절히 원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떡을 가지시고 감사기도 하신 후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또 포도주 잔을 나누시면서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인자(예수님)는 이미 작정된 대로 가거니와 그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하시면서 안타까와 하셨습니다. 오늘은 유월절 만찬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을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예수님이 실제 유월절의 양이심을 제자들이 알기를 원하셨습니다 유월절은 무슨 절기일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430년간 애굽 나라에서 종살이를 했습니다. 참으로 힘들고 괴로운 시간이었습니다. 때가 차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세워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을 내어 주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알렸지만 애굽의 바로 왕은 순종하지 않았고 완고하게 고집을 부렸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열 가지 재앙을 내려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셨습니다. 그 마지막 열 번째 재앙은 장자들과 짐승의 처음 난 것들을 다 죽이시는 재앙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어린 양을 잡아 대문에다 그 피를 바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죽음의 사자가 그 피를 보고 그 집을 넘어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유월’이란 말은 한자어로 ‘담을 넘는다’는 뜻입니다. 어린 양의 피가 그들을 죽음에서 구원하신 것이지요. 그것을 기념하여 지키는 절기가 유월절입니다. 과연 어린 양의 피가 그들을 구원한 것일까요? 짐승의 피가 사람을 구원할 수는 없습니다. 어린 양의 피는 앞으로 오실 예수님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피 흘려주심으로 그를 믿는 자들이 죽음에서 구원받고 영생을 얻게 될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즉 유월절의 어린 양은 그림자라면 예수님은 실체가 되는 것이지요. 이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이 땅에서의 마지막 유월절을 지키시며 제자들에게 자신이 실제 유월절의 어린 양이심을 가리켜 주기를 간절히 원하신 것입니다. 고전5:7에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가리켜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1:29)라고 증거했습니다. 둘째, 예수님이 주신 떡은 우리 위해 죽으실 그분의 몸을 나타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떡을 나눠 주시면서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밤이 지나면 유대인들에게 붙들려 심문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게 됩니다. 이것을 미리 내다 보시면서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먹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즉 예수님의 죽으심은 제자들을 위해 그 몸을 내어 주시는 죽으심인 것입니다.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화목제물로 드려지는 희생제물로서의 죽으심인 것이지요. 그래서 떡을 먹는 것은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 자신을 믿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생명이신 그의 살을 먹는 것이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영생을 얻게 됩니다. 셋째, 예수님이 주신 포도주는 우리 위해 흘리실 그분의 피를 나타냅니다 예수님은 포도주를 주시면서 “이것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시게 될 피는 우리의 죄를 위함입니다. 성경에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실 피는 죄를 씻는 샘물이 되리라고(슥13:1) 하셨습니다. 또 피흘림이 없이는 사함심이 없다고도(히9:22) 했습니다. 즉 예수님의 피는 우리의 죄를 씻어 깨끗게 해 주시는 용서의 보혈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 피를 의지하고 회개하는 자는 죄사함을 받는 것이지요. 제자들에게 포도주를 마시라고 할 때 그것은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시게 될 보혈을 믿으라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흘리신 보혈을 믿는 자는 죄사함을 받고 영생을 얻는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성도님들도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깊이 생각하고 믿음으로 성찬에(예수님의 몸과 피에) 참여하는 성도님들이 되길 바랍니다. 할렐루야! 아멘4주 전by 윤부현왕의 신하 가족의 구원
설교일 : 2022.1.9.주일오전 성 경 : 요4:46-54 예수님께서는 여러분 가정의 모든 식구들이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말씀에도 왕의 신하의 아들의 열병으로 인해서 온 가족이 구원받은 사실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사실 아들이 죽을 만큼 힘든 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은 온 가족들에게 슬프고 힘든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일로 인해서 하나님께서는 그 아이의 병도 고쳐주시고 온 식구들의 영혼도 구원받게 해 주시는 놀라운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가버나움에 왕의 신하가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의 아들이 열병이 들어서 거의 죽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의 아버지가 예수님께서 갈릴리에 오신다는 소문을 듣습니다. 왕의 신하는 약80리(32km)나 되는 먼 길을 마다 않고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오셔서 고쳐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가라 네 아들이 살아 있다”고 말씀하셨고 그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돌아갑니다. 도중에 그의 종들을 만나 아이의 열기가 떨어졌다는 얘기를 들었고, 그 때가 바로 예수님께서 살아 있다고 말씀하신 그 때인 것을 알게 됩니다. 아이는 살았고 온 가족들은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첫째, 가정에 어려운 일이 생기면 예수님께 기도하십시요 왕의 신하의 가정에는 아들이 열병이 들어 죽을 지경에 있는 일이 생겼습니다. 온 가족이 다 힘든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그때 왕의 신하는 예수님께 나아갔습니다. 예수님의 능력을 믿고 간구했습니다. 여러분! 어려운 일이 있으면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요. 예수님께서는 내 이름으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들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의 가정에는 어떤 힘든 일들이 있습니까? 예수님께로 그 문제를 가져가세요. 예수님께서는 마11:28에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왕의 신하는 소문을 듣고 예수님을 알았지만 우리들은 성경 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분에게는 능치 못한 일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기뻐하시면 여러분의 어려운 일들을 다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둘째, 예수님의 말씀은 믿고 그대로 순종하십시요 왕의 신하는 자기 집에 내려오셔서 아이의 병을 고쳐달라고 했지만, 예수님은 그 자리에서 그냥 네 아들이 살아 있다고만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그대로 예수님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그 시간에 예수님의 말씀대로 아이의 열기가 떨어졌다는 얘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주십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죄사함 받고, 예수님 믿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천국에 들어갑니다. 그대로 믿는 자에게는 반드시 그런 영광을 보게 될 것입니다. 히11:1에 보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했습니다. 셋째, 기적보다 귀한 것은 믿고 구원 받는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진정으로 원하신 것은 아이의 병보다도 그 가족들의 구원이었을 것입니다. 그 아이의 병은 가족들에게 잠시 힘들게는 했지만 영혼이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게 됨은 얼마나 다행스럽고 복된 일인지요. 아마 아이가 아프지 않았다면 왕의 신하는 예수님을 찾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왕의 신하는 돈도 많고, 사회적으로 신분도 높으니 그럴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러나 아들의 병이 예수님을 찾게 했고, 온 가족이 구원받는 축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권능을 주시면서 전도하러 보내십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항복하더라고 기쁨으로 보고합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눅10:20)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되어 있는 것을 믿고 기뻐하십시요. 어떤 기적보다 귀한 일입니다. 예수님을 보내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날 위해 십자가에 죽어주신 예수님의 은혜에 항상 감사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아직 믿지 않는 가족들의 구원을 위해 끝까지 기도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할렐루야! 아멘.4주 전by 윤부현